“천국에서도 억울해서 눈물 흘리고 싶다…” 국민변태의 손에 트위스트킴이 무너지는 충격 사연

트위스트킴으로 활동한 배우 김한섭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다른 예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뛰어난 춤 실력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트위스트 댄스를 선보이며 ‘트위스트킴’이라는 예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4년 간의 긴 투병 끝에 2010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적신호를 켠 이유는 예명과 관련된 일화가 있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26세에 연기를 위해 부산에서 상경한 트위스트 김은 영화 도쿄에서 온 남자로 데뷔했다.


이후 엄앵란, 신성일 등 톱스타들과 함께 영화 ‘맨발의 청춘’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스타덤에 오르면서 <잃어버린 태양>, <뒤틀린 김과장>, <동경아리랑> 등 15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뛰어난 춤 실력과 재치 있는 성격으로 영화는 물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그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그는 66세까지 탐정반장 트위스트김에서 주연을 맡아 이 작품으로 배우 인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2003년, 71세의 나이로 트위스트 김이 돌연 뉴스에 떠올랐다.

트위스트킴이라는 예명으로 포르노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그는 사이트와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만든 사이트이거나 관련이 있다고 오해했습니다.


트위스트킴은 사이트 운영자와 포털업체 등 20개 사이트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고소장에서 “음란사이트 운영자들이 음란물을 게시하기 위해 ‘김태형’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고, 포털업체들은 검색창에 ‘김태형’을 입력해 성인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광고와 계약이 하나씩 취소되면서 이미지가 소실됐다”고 말했다.

당시 트위스트킴은 이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그런 법이 없었기에 ‘패소’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약국 감초’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중 ‘포르노 사이트 주인’이라는 루머가 퍼지면서 ‘팝’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아무리 아내 이옥이가 나서서 “아니오”라고 외쳐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내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 소문이 돌고 일거리가 안 나왔다. 사람들과 연락도 끊기고 정말 힘들었다”며 트위스트킴 부부를 극심한 우울증에 빠트렸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 자신의 예명을 딴 음란사이트 운영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무개 등 운영자 4명은 기나긴 공방 끝에 김씨에게 양육비 2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김씨의 예명을 도메인네임으로 사용하는 것은 김씨가 음란사이트 운영자이거나 음란물에 연루됐을 뿐 아니라 김씨의 사회적 가치와 가치관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예명으로 포르노 사이트를 상기시켜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결백이 드러나자 차차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그에게 억울한 사고가 발생하자 배우로서의 삶을 재개하려 한다.


2006년 9월 그는 호텔에서 공연을 하던 중 넘어져 “외상성 뇌출혈”을 겪었다.

당시 뒤로 넘어져 뒤통수에 큰 상처를 입고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심각해 1년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았고, 말을 할 수 없고 발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합병증으로 인해 자신.

이씨는 당시 “남편이 너무 아파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4년간의 치료 끝에 결국 2010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영화산업협회 관계자는 아무도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끝까지 외면당했다.

과거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의하며 정부영화를 거부했던 그에게 동세대 배우들이 그의 행동을 현실도피로 보고 노골적으로 배척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장례식에는 신예 배우 이효정만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전에는 청바지를 좋아했고 죽을 때는 청바지로 화장을 하라는 말처럼 청바지로 궁궐에 들어갔다.